창 밖에 있던 반곡역.

중앙선 철길 따라 여행하다 보면 가끔은 마주 오는 다른 열차에 맞추어 신호대기를 하면서 이름 모를 역에 서기도 한다. 낡은 단선 철길이기에 어느 한 쪽이 양보해야 한다. 타고 내리는 사람 많은 원주역을 지나 어느 산골 역에서 그렇게 잠깐이나마 머문 적이 있었다. 역 한쪽 구석 나무 아래 닭 몇 마리쯤 모이 찾아 돌아다녀도 이상할 게 없을 법한 시골역이었다. 고개를 돌리니 나무 사이로 아득한 시간을 담은 듯한 작은 역사가 눈에 들어왔고, 쏟아지는 햇살을 가득 받으며 곱게 빛나는 모습에 가던 길 돌리고 그냥 이 시골역에 내리고 싶었다. 먼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가 없었다면, 여느 때처럼 방향은 정했는데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여행이었다면 그날은 반곡역에서 그만 내리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리움은 그렇게 창 밖에 있었다.




치악산 기슭 산골 역.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가는 것은 다르다. 8월 햇살을 받으며 치악산 기슭 반곡역으로 간다. 산을 오르다가 불현듯 뒤돌아보는 느낌으로 지난날 기억 속으로 가는 길이다. 너무 늦게 왔을까. 포도밭 사이로 시골집 몇 채 있던 고즈넉한 마을이 혁신도시라는 알 수 없는 이름으로 다 철거되고 잡초만 무성한 벌판이 되고 말았다. 어수선한 바람을 뒤로하고 할아버님 모신 절에 할머니와 함께 가는 듯한 쓸쓸한 오솔길 따라가니 멀리 보이는 큼직한 전철주가 반곡역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한여름 짙푸르게 우거진 수풀 속에 숨어 있어 역 앞마당까지 가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중앙선 철길이 원주역에서 제천역으로 이어지는 길목, 치악산 깊은 자락에 반곡역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도 처음 가는 길이라면 기차역이 도대체 어디쯤 있는지 찾기란 그리 쉽지 않을 듯하다. 늦은 4시, 사진 담기에 가장 좋은 빛이 내리는 시간이다.




벚나무 고목 두 그루.

여름이면 나무 아래 그늘이 더욱 반갑다. 시골역에는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큰 나무가 함께하기 마련이고, 치악산 자락 산골 역이라면 더욱 깊이 있는 그늘을 안겨주지 않을까. 사르륵사르륵 산골바람 스치는 반곡역에는 오래된 시간을 감싸 안은 벚나무가 찾아오는 이를 반겨준다. 다른 한쪽에는 긴긴 세월 거친 바람을 겪었을 듯한 은행나무도 있고 소나무 들과 함께 어우러져 그윽한 숲 속 정원을 만든다. 발걸음을 멈추어 한참을 서성이다가 시간을 더듬어 본다. 나무한테 기차역 이야기를 물어보고 싶다.

사월에는 반곡역에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면서 늦은 봄을 알리고,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반곡역에서 몇 차례 근무하셨던 분 말씀으로는 예전에는 벚꽃이 참 좋았는데 그동안 몇 그루가 노쇠하여 없어지고 갈수록 나무가 늙어간다고 하신다. 지금 반곡역 앞마당에는 벚나무 고목 두 그루가 남아 있다. 천 년을 사는 은행나무와 달리 왕벚나무 수명은 60년 정도, 반곡역에서 흐른 시간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




높게 솟은 삼각 박공지붕.

원주 반곡역은 일제 강점기 후반, 1941년에 처음 문을 열었다. 같은 중앙선 역으로, 이보다 조금 일찍 1940년 영업개시한 경기도 양평 구둔역과 양동역도 원주 반곡역과 비슷한 설계이며, 건축 자재는 달라졌어도 건물 형태는 옛 모습 거의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반곡역과 구둔역은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역으로 손꼽히며, 등록문화재 제165호, 제296호로 각각 지정받았다.

건물 전체가 그리 크지 않으면서 한쪽으로 치우친 편심 구도로, 맞이방 위로 높게 솟은 큰 박공지붕과 철로 쪽으로 나온 역무실 위에 얹은 작은 박공지붕이 서로 어긋나는 듯하면서 절묘하게 어울리며, 일본식 겹지붕에서 벗어나 지붕과 차양이 하나로 이어져 홑지붕을 만든다. 일제 강점기 1930년대 말 시골역 표준설계를 따랐지만, 유럽식, 일본식, 조선식이 함께 어울려 한국다운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지붕이 살짝 기우뚱하면서 기둥 사이 간격이 딱 맞지 않아서 흐트러진 듯한 모습도 그렇다. 너무나 일본식이어서 거부감을 주는 경부선 심천역이나 유럽식과 일본식이 뒤섞여서 그만큼 낯설게 느껴지는 중앙선 우보역, 화본역, 신녕역 등과는 다르다.

일제는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론을 내세운 황국 신민화 정책으로 조선을 일본에 동화시키려 했고, 특히 1930년대 이후 강압적인 민족 말살 정책을 펼쳤다. 상처는 더욱 깊어 갔지만, 무릇 문화란 한쪽으로만 흐를 수 없는 만큼 조선과 일본 문화가 서로 섞이거나 일본인이 조선 땅에서 조선에 동화되기도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주체가 되어 부설한 철도이고, 유럽식 건축을 본떠 일본식 시골역 표준설계를 만들었어도, 지역에 맞추는 과정에서 조선인 기술자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조선식으로 바꾸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반곡역사가 지니는 역사성은 일제 강점기 후반 건축으로 조선 정신이 담긴 숨은 저항을 잘 반영한다는 데에서 그 가치를 찾아볼 수 있다.

반곡역사는 역사성 깊은 아름다운 건축이면서 보존 상태도 매우 좋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정선 나전역처럼) 목재 비늘판벽이었으나 1952년 흙벽에 시멘트 뿜칠 마감과 함석지붕으로 수리하면서 지금에 이른다. 구둔역과 양동역은 지붕 개량 공사로 건물에서 느낄 수 있는 전체 인상이 많이 달라졌으나 반곡역은 낡은 기와지붕과 나무 미닫이문이 그대로 남아 있다. 구둔역처럼 옛 철도청 시절 하얀색 역명판이 남아 있으면 더욱 그림 같겠지만, 오래된 역사와 별로 어울리지 않은 듯 파란색 코레일 역명판이 붙어 있다.

현재 미닫이문이 남아 있는 역은 반곡역 외에 경전선 낙동강역, 경춘선 경강역, 백양리역 등으로, 전국에 몇 군데 되지 않는다. 더 찾아보아도 관리할 역무원이 없다는 이유로 문과 창문을 널빤지로 막아놓았거나 문짝을 아예 떼어버린 곳이 몇몇 있을 뿐이다. 구둔역과 양동역도 맞이방 안쪽에서 보면 옛날 미닫이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지금은 여닫이 철문이나 유리문이다. 물론 옛날 시골역이 모두 미닫이문이었던 건 아니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면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문을 열 수 있도록 (옛 단성사 극장처럼) 여닫이문을 달았을 테고, 미닫이문은 열고 닫음을 조절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대체로 타고 내리는 사람이 적은 한적한 역에서나 가능한 구조이다. 그리고 여닫이와 미닫이 차이만으로 신식과 구식, 일본식과 조선식 어느 한 쪽이라고 딱 잘라서 얘기하기는 어렵다.








미술관이 된 시골 기차역.

중앙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간현역, 원주역, 반곡역, 치악역, 신림역 등을 지나는 기존 원주 구간은 새 철길로 옮기면서 사실상 거의 모두 폐선이 된다. 반곡역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서 폐역이 되어도 철거하지 않고 한국철도공사에서 문화재청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등록문화재로 지정된다고 문화재청에서 꼼꼼히 관리하게 아니다. 사적으로 지정되어도 유리창 깨진 채 여전히 방치된 구 서울역사나 낙서투성이 등록문화재 대구 동촌역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듯 오히려 민간인이 자원봉사조차 할 수 없게 되어 폐허처럼 되고 말기도 한다.

반곡역은 MBC 베스트극장에서 몬트하임역으로도 나온 적이 있는 등 인기 있는 촬영 장소이다. 비단 흘러간 영상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철도인과 원주 문화인으로부터 많은 애착과 관심을 받는 곳인 만큼 폐선이 되어도 미술역사로 남아 있게 된다. 이미 박명수 화백이 반곡역에서 개인전을 연 적이 있으며, 반곡역사 미술공간만들기위원회와 카나비에서 추진한 '철도역사(歷史)를 담은 미술역사(驛舍) 만들기' 프로젝트가 지원을 받아 반곡역이 갤러리로 거듭나게 되었다.

비록 좁은 시골역 맞이방이지만 전시실로 새로 꾸몄다. 한쪽 벽 창문을 가려 전시 공간을 늘리고, 그동안 겨울 난방 문제로 천장을 낮추고 지붕 밑 높은 창문을 가렸던 것을 처음 모습처럼 천장을 다시 높게 하고 지붕 밑 창문을 통해서도 채광할 수 있도록 했다. 미술역사가 되면서 오히려 옛 모습에 가까워진 셈이다.

가을에 반곡역에 가면, 오래된 나무 미닫이문 너머 기차가 지나가는 풍경이 커다란 액자처럼 펼쳐지면서 스쳐 지나가고 벚나무 낙엽이 맞이방 안으로 바람 따라 굴러 들어오는 갤러리를 볼 수 있을 듯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뒤돌아보며 아쉬워하는 이가 많지만,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이 만나는 이곳에서는 꼭 그렇지마는 아닐 듯하다.






빛이 내리는 기차역.

기차역에서 길게 머무는 것은, 생각해보면 어색한 일이다. 기차가 머무르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역이라면, 더는 타고 내릴 수 없는 역이라면 그런 어색함은 얼마쯤 접어둘 수 있다. 이곳에서 사진 몇 장 찍고 바로 떠나지 못한 것은 어느 역보다 빛이 아름답게 내리기 때문이다.

8월이 그렇게 지난다. 여름빛이 저물어 가고 가을빛이 다가서는 시간이다. 이어지는 계절이 깊어가면서 단풍 든 치악산이 넉넉하게 감싸주고 벚나무랑 은행나무 낙엽이 앞마당에 소복이 쌓여 가을빛 가득한 반곡역으로 다시 떠나고 싶다.


사진 - 2009.08, 글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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