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역과 벚나무 한 그루.

시골역에 가면 나무가 사람을 맞는다. 역마다 전나무, 향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벚나무 들이 수많은 인연을 지켜보면서 긴 세월을 함께한다. 아담한 삼각 박공지붕 아래 하얀색 역명판이 걸려 있고, 한적한 앞마당에 벚나무 한 그루가 사람을 맞아주는 그런 그림 같은 시골역, 그곳이 하동 북천역이다.

지금도 벚꽃 피는 봄에 하동에 가면, 하동역은 기찻길 따라 벚나무가 줄지어 뽐내는 정취가 좋아 많은 관광객이 찾지만, 북천역은 가끔 멈추는 기차가 떠나면서 바람 소리만 스쳐 가는 곳이다.


북천 코스모스역.

경전선 한 길목, 남도 조그만 시골역이던 북천역이 소담스럽게 키운 코스모스밭 덕에 요 몇 년 사이 이름이 알려진 관광지가 되었다. 9월 초가을 바람에 코스모스가 흔들릴 때면 경남 하동 북천 코스모스 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북천역도 여기에 코스모스역으로 동참하게 되었다.

꽃놀이 즐기는 사람한테는 해마다 기다려지는 즐거운 꽃 잔치일 테고, 하동군이나 한국철도공사에서도 여행을 즐기는 소수 몇 명보다 대다수 관광객이 더 반가운 손님인 것은 말할 나위 없다. 보름 남짓한 축제가 열리는 동안 북천 코스모스역을 찾은 관광객 수가 코스모스역이 되기 전 시골 북천역에 한 해 동안 다녀간 사람 수의 몇 배가 된다면 얘기가 될까.

한편으로는 사람 없는 시골역에서 혼자 사진 찍는 게 익숙하고 또 그런 호젓함을 바라는 소수 여행자한테는 이러한 변화는 곧 불편해진다는 걸 뜻한다. 카메라 렌즈 앞에 다른 누군가 사진을 찍고 있어 기다려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서로 눈치 보며 양보 아닌 양보도 해야 하고, 심지어 "어이!"라고 소리치며 아무한테나 비키라고 하는 건방진 사진사도 얼쩡거린다는 걸 말한다.








혼자 해야 하는 것.

혼자 해야 하는 취미로 무엇이 있을까. 먼저 '낚시'를 들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함께 즐기기는 어렵고, 굳이 누군가와 같이 간다면 낚시를 좋아하면서 아무 말 주고받지 않아도 멋쩍지 않고 곁에 있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친구와 함께할 수 있겠다. 그리고 '오디오'도 어쩔 수 없이 혼자 하는 취미라 할 수 있다. 소리를 찾는 건 적당한 AV 시스템으로 안방극장 꾸미고 가족이 함께 영화를 즐기는 것과는 다르다. 때로는 동호인끼리 만나 오디오 시청 모임도 열지만, 특별행사일 뿐이다.

'사진'도 오디오처럼 가끔 여러 사람이 모이기도 하지만 혼자 가는 게 맞는 일이다. 여기서는 가족사진이나 친구나 연인끼리 사진 찍어주는 건 논외이고, 인물 사진이라면 스튜디오가 아닌 이상 누군가 곁에서 반사판이라도 들어주어야 하니 사람 손이 아쉬울 때가 물론 있다. 그래도 거리 사진이든 자연 사진이든, 심상 사진이든 달력 사진이든 결국 혼자 셔터를 눌러야 하고 다른 사람은 곁에서 가만히 기다려줄 수 있는 게 고작이다. 사진도 낚시가 그렇듯 마음이 잘 통해서 아무 말 나누지 않아도 편하게 함께 있을 수 있는 내 사람이 아니면 이래저래 같이 찍으러 가기는 쉽지 않다.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뒤돌아보며 아쉬워하는 이가 많다. 새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흘러간 지난날에 좋은 것이 더 많았다고 여기면서, 그렇게 추억에 잠기는 듯하다. 9월 꽃 잔치가 열리기 전에 미리 북천역을 찾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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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2006.09 / 2009.09, 글 - 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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