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나전역 가는 길.


낡은 기차는 민둥산을 돌아서
초여름 햇살 속으로 달린다.
잊었던 그리움을 별어곡에 남기고
산골 간이역으로 다시 떠난다.

처음 가는 길은 나를 자극하고,
다시 가는 길은 나를 추억한다.


제천역을 출발해 증산역에서 정선선으로 들어선 꼬마열차는 여름 향기 가득한 산골짜기와 더불어 별어곡역, 선평역, 정선역을 차례로 지나 강바람 따라 다시 달린다. 그렇게 찾아간 정선군 북평면 북평리, 정선 나전역이 있는 곳이다.

정선 철길 꼬마열차는 덜컹덜컹 리듬에 맞추어 느릿느릿 달리지만, 아무도 속도를 탓하지 않는다. 비록 옛 비둘기호 꼬마열차와는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고, 그저 느리게 달리는 무궁화호 열차일지라도, 존재감이 강한 산과 강이 끊임없이 자극하는 탓에 기차 탄 사람은 시선을 여기저기 돌리기에 바쁘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경춘선 열차도 승용차로 따라가기 힘들 만큼 생각보다 빨리 달리지만, 정선선 꼬마열차는 나란히 같이 달리던 승용차한테 쉽게 추월당할 만큼 느리다. 때로는 차 타고 가면서 꼬마열차 구경하던 사람과 기차 안에서 창밖 풍경을 감상하는 사람이 서로 눈웃음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아무도 없는 간이역에서.

해는 그림자로 말하고, 기차역은 철길로 말한다. 능내역처럼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역은 녹슨 철길이 그 자리에 있고, 별어곡역처럼 단선 철길인데도 교행이 없는 역은 매끈한 본선과 녹슨 대피선이 대비를 보인다. 본선 하나뿐인 간이역, 나전역 철길은 낡은 역 건물과 어울리지 않게 새로 깔린 듯한 자갈이 가득하다. 2002년, 그해 여름 태풍이 쓸고 가는 바람에 정선 ~ 구절리 간 열차 운행이 한동안 중단된 적이 있었고, 2004년 2월에야 지금 있는 철길이 다시 열렸다. 바로 그 흔적이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기차역이지만, 몇 년마다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여 새로움과 아쉬움을 함께 준다. 나무 역명판은 없어지고, 꼭 버스정류장처럼 새로 단장하였다. 보도블록을 새로 깐 플랫폼 한 곳에 조그만 그늘막 하나, 긴 의자 하나, 가로등 하나가 이곳이 무인 간이역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산골 도깨비 마을, 정선 나전역.

2004년, 나전역에 또 다른 바람이 찾아오기도 했다. 성신여대 미대 학생이 모여 정선선 간이역에 벽화를 그렸고, 나전역은 산골 도깨비 마을로 예쁘게 꾸며졌다. 아우라지역, 구절리역은 정선선 관광 개발에 맞추어 모습이 달라졌고 그림도 사라졌는데, 나전역은 그때 그린 벽화가 아직 남아 있다. 낡은 목조 건물이 정성 가득한 예쁜 도깨비 그림에 그나마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우고 찾아오는 이를 반긴다.

2006년,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함백선 함백역, 경북선 보문역, 영동선 하고사리역, 정선선 나전역 들을 철거할 계획이었고, 그해 함백역이 공문 한 장에 지역 주민 협의도 없이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철거되면서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적이 있다. 정선군에서 철거 반대하고, 함백역 철거 사건에 따른 여론 덕분인지, 나전역은 공사용 울타리까지 다 세운 상태에서 철거 직전에 겨우 살아남았다. 어느 간이역이 이처럼 사연이 많을까. 아무튼, 그렇게 2009년 현재 40년 된 낡은 나무집 간이역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이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다운 것처럼, 간이역도 그 자리에 옛 모습으로 남아 있을 때 가장 정답기 마련이다. 정선 나전역과 긴 시간을 같이 보냈을 늘푸른큰키나무, 전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나를 반겨주고, 새로 심은 듯한 자작나무도 나를 보고 수줍게 인사하지만, 아쉽게도… 정선 나전역 앞 은행나무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 빈자리를 더듬어 그 곁에서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본다.








여름날 정선에서 제비를 보았다.

정선 산골 역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까. 밀물이 들어오고 한참이 지나야 나타나는 썰물도 아니면서 아침에 떠난 열차가 한나절이나 지나야 다시 왔지만, 산골 간이역에는 내리는 사람도 타려는 사람도 없을 때가 다반사일까. 보금자리로 돌아온 여름날 정선 제비처럼 기적 소리도 없이 넌지시 다가온 꼬마열차가 여기 나전역에 다시 찾아왔다. 간이역에서 기차가 머무는 시간은 짧기에 잠깐이나마 바빠진다. 서둘러 기차를 타고 풍경에서 일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사진 - 2009.06, 글 -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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