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없는 추암역.

동해역을 거쳐 추암해수욕장 입구에 도착했다. 추암 촛대바위와 함께 삼척선 추암역이 있는 곳이다. 추암역은 역사도 없이 플랫폼 한구석에 덩그러니 의자 몇 개만 있는 해안선 간이역이지만, 정선선 별어곡역처럼 시골역이 그렇듯 모래흙 깔린 플랫폼을 사각사각 밟는 느낌이 좋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도 낡은 것처럼 편안함을 주는, 그런 무게감이다.

동해역에서 삼척역으로 이어지는 영동선 지선, 삼척선에도 한때는 통일호와 비둘기호 열차가 다닌 적이 있었다. 1991년 8월 여객 취급 중지로 화물열차만 이따금 다니던 철길에 임시 관광열차가 머물게 되어 1999년 새로 생긴 역이 추암역이고, 폐역이었던 후진역도 나중에 다시 문을 열었다. 관광열차로 바다열차, 임시 무궁화호 열차, 그리고 고급 침대열차 해랑 등이 드문드문 머무는 역이다.






서로 다른 시선.

한국 철도는 일제 강점기 식민수탈이라는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호남선 등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처럼, 서울을 중심으로 바퀴살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가지 않고, 대전에서 목포와 부산으로 갈라지는 나뭇가지 모양이다. 바퀴살이 아닌 나뭇가지 모양으로 놓인 철도는, 그 모습 그대로 식민지 자원을 남김없이 착취해서 뽑아내는 수단이었음을 말해준다.

대한제국도 서울과 목포를 잇는 독자적인 간선 철도를 놓으려 했으나 경부선 철도 부설권이 일본 제국으로 넘어가면서 실패하였다. 일제는 경부선과 경의선 부설권을 얻어 대한제국 철도망을 장악하였고, 이는 만주와 일본을 잇는 국제 간선 철도이면서 군수물자와 병력을 수송하는 주요 수단이기도 했다. 국권 침탈 이후 조선총독부가 단기간에 호남선 철도를 경부선 지선 형식으로 만든 것도 쌀을 목포나 부산을 통해 일본으로 수송하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곡창 지대 따라 이어진 전라도 시골역은, 다르게 말하자면, 식민수탈 기지였던 셈이다.

조선총독부가 관리하던 국철뿐만 아니라 사설철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데, 경춘선 강촌역도 일제 강점기에 원목을 싣는 화물역으로 처음 만들었다. 이러한 역사를 모르거나 무시하고 통기타 메고 통일호 열차에서 내렸던 추억만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을 듯하다.

삼척선도 항만이나 삼척 시멘트 공장 등에 맞추어 1944년에 북평역(동해역 옛 이름) ~ 삼척역 구간을 완공한 철길로 일제 강점기 말에 추진했던 노선이다. 일제 강점기와 근대화라는 역사(歷史)가 있는 동해역, 삼척역과 달리 새로 생긴 추암역은 역사(驛舍)도 역사(歷史)도 없는 바닷가 곁에 있는 소박한 간이역일 뿐이기에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것도 상대적이다. 이를테면 하루에 열차 몇 편 다니지 않는 정선선인데도 별어곡역을 놀이터 삼아 놀던 동네 아이들은 기차 소리가 시끄럽다고 귀엽게 투덜거렸다. 간이역을 찾아 사진여행을 떠나는 나 같은 사람한테는 예쁜 시골역이지만 그 역이 일터인 역무원한테는 겨울이면 춥고 여름에도 좁고 불편한 낡은 건물일 뿐이다. 어쩌다가 화물열차 한두 번 지나가면 그뿐인 한적하던 삼척선 철길에 추암역이 새로 생겨 때가 되면 관광열차가 멈추니 요란한 열차 소리에 불만을 나타내는 마을 주민도 있을 듯하다.








바닷가 역 새 이름, 삼척해변역.

추암에서 증산을 지나 삼척해수욕장이 있는 삼척해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웃 추암역처럼 역에서 바닷가까지 200m 정도 떨어진 또 다른 해안선 간이역이다. 낡은 지도를 펼치고 동해안 삼척선을 찾아보면 동해역(북평역)과 삼척역 사이에 후진역이란 곳이 있다. 1992년 문을 닫았다가 2001년 다시 열었고, 원래 뒷나루를 한자로 적어 후진(後津)이라 하였으나 어감이 좋지 않아 2003년에 삼척해수욕장 이름을 따라 삼척해변역으로 이름을 고친 역이다. 수많은 간이역이 사라지는 가운데, 관광 수요에 맞추어 이곳처럼 새로 생기기도 한다는 건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다.

삼척해변역은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지 알려주는 해송이 병풍처럼 나무집 역을 감싸고, 옥수수밭이 눈에 가득 들어오는 한적한 곳이다. 강릉역과 삼척역 사이 해안선 따라 달리는 파란색 바다열차가 머물면 잘 어울리는 곳이다. 7월 햇살은 역시 뜨겁다.


사진 - 2009.07, 글 - 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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