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이 내린다.

벚꽃이 눈이 되어 내리는 사월 봄날, 중앙선 철길 따라 제천역으로 간다. 그곳에서 다시 아우라지행 정선선 무궁화호 열차로 갈아탄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것도 모자라 꽤 기다렸다가 바꾸어 타야 하는 여정이지만, 비록 하루에 몇 편 없어도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간이역인 게, 더 늦기 전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일 뿐이다. 같은 시골역이라도 기차가 서는 곳과 그냥 지나가는 곳은 그 모습부터 사뭇 다르다.

한참을 가다가 잠깐 정차하면서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 내리시고 옥빛 옷을 차려입으신 할머니께서 자리를 잡으신다. 아마도 입석표로 타신 모양이다. 수첩에 낙서하던 손길을 멈추자 원주 가는 길이냐고 물어보신다. 뜬금없이 정선 가는 길이라는 답에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신다. 어쩌면 원주역에서 내리시려나 보다.

"이기 동해 가드래요?"
"예, 동해역 가요."

언젠가 강릉 가는 기차를 타는데, 사북역이었던가, 태백쯤에서 타신 그때 그 강원도 할머니도 생각난다.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할머니는 누구에게나 거리감 없이 말씀을 나누신다. 할머니들끼리는 처음 보는 사이라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꽃을 피운다.


제천역 칼국숫집.

제천역은 중앙선에서 태백선, 충북선이 만나는 곳으로, 승강장 매점 가락국수가 유명한 곳이다. 기차가 잠시 정차하는 동안 후루룩 먹고 부리나케 다시 타는 촌극도 펼쳐지기 마련인데, 지금은 전국에 걸쳐 대전역과 제천역에만 있다고 한다.

역을 나와 약속 장소로 간다. 포근하게 감싸는 봄 햇살을 뒤로하고, 주말인데도 넉넉한 주차장 앞을 지나 역전 칼국숫집으로 들어선다. 신문지로 도배한 허름한 가게 안에는 온갖 낙서가 가득하다. 이런저런 사연과 날짜를 보니 벽지 대신 붙인 신문지와 달력 조각이 3년은 가볍게 넘긴 모양이다.

육개장, 떡만둣국, 칼국수… 뭘 먹을 것인지 물어보는 주인아저씨 말씀에 차림표를 찾아보니 단출하다. 장사가 좀 되는 가게일까. 칼국수를 시키니 나무 도마에서 손수 반죽을 썰어 칼국수를 만든다. 오랜만에 보는 밥집 부엌 모습이다. 이윽고 매운맛 칼국수를 쟁반에 담아오신다. 주인아저씨 손가락이 살짝 들어가도 그리 뜨겁지는 않은 모양이다. 여행길이라 그런가, 그런 것조차 거부할 수 없는 시골 칼국수이다.

제천역 맞이방도 역전 칼국숫집처럼 허름하기는 별다를 게 없다고 할까. 기차를 기다리는데,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대부분으로 젊은 사람은 별로 없다. 앞자리에 앉아계시는 푸른색 작업복 차림 영감님께서 담배를 피우시는데, 아무도 타박하지 않는다. 서울이라면 벌써 직원이든 누구든 담배 끄라고 뭐라고 했을 텐데, 나조차 그럴 수가 없었다.

담배 끊은 지 몇 년이 지나 그 연기가 참 역겹지만, 웬일인지 제천역 영감님 싸구려 담배 연기는 참을 만했다. 그 순간만큼은 싫지만은 않았다. 시골 아침에 문득 잠이 깨면 소 여물을 삶는 냄새도 난다. 손때 묻은 낡은 작두로 누렁이 먹일 꼴을 베고 커다란 가마솥에 소 여물을 삶았다. 쾨쾨했지만, 익숙해지면 그것 나름대로 친숙함을 안겨준다.


정선선 꼬마열차.

정선선은 가장 마지막까지 비둘기호 열차가 다녔던 철길이다. 기관차와 객차 한 칸뿐인 2량짜리 비둘기호 꼬마열차가 다른 곳보다 늦게 2000년 말까지 다녔다. 이후 2007년까지 관광열차를 겸한 (이름 참 멋없는) 통근열차가 여전히 몇 칸 안 되는 꼬마열차로 운행하다가 내구연한 등 몇 가지 사정으로 없어졌다. 김대승 감독 영화 「가을로」에 정선선 꼬마열차가 나오기도 하여, 예전에 산 따라 물 따라 달렸던 모습을 필름으로나마 볼 수 있다.

정선선은 태백선 지선으로, 증산역과 구절리역을 연결하는 철길이다. 아우라지역과 구절리역 사이는 열차운행이 폐지되고 관광용 철도자전거가 다닌다. 2008년 이후 정기 운행 노선으로 태백선 따라 제천역까지 연장하여 제천역과 아우라지역 사이를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 2번 왕복 운행한다. 예전 비둘기호 꼬마열차보다는 조금 길지만 기관차, 발전차, 객차 2칸이 전부인 4량짜리 열차이다. 장날이라 사람이 조금 많으면 모를까, 이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객차 안에 몇 사람 없다. 승용차나 버스를 이용하면서 수요가 줄고, 하루에 몇 편 운행하지 않으니 불편해서 타는 사람은 더 줄기 마련이다.

제천, 쌍용, 연당, 영월, 석항, 예미, 자미원, 증산… 기차가 태백선을 달려 증산역을 거쳐서 정선선 첫 번째 역, 별어곡역을 향한다. 태백선을 달리다 보면 일본식이 아닌, 조선식 기와지붕이 멋있는 한옥 역사 영월역이 눈에 들어오고, 해발 688m 고갯마루에 자리 잡은 자미원역도 근사하다. 해발 855m에 자리 잡은 추전역이 한국에서 가장 높은 역이라고 하나 같은 태백선에 있는 자미원역도 봄이 늦게 오는 곳이다. 사람 없는 낡은 간이역, 자미원역 뒤로 펼쳐진 자작나무숲이 근사했는데, 구학역처럼 녹색 울타리로 역사를 둘러싸 그만 새장이 되고 말았다.









별어곡역에 내리다.

기차에서 내려 별어곡역 플랫폼을 밟는다. 모래알 사각거리는 낡은 비포장 플랫폼을 밟는 느낌이 좋다. 어째서 이제야 왔느냐고 내 어깨를 다독거리는 듯하다. 나를 내려준 기차가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차장 아저씨가 역사를 가리키면서 나가는 방향을 알려주다가 반쯤 허물어진 플랫폼에 발을 그만 헛디딘다. 모르기는 해도, 내리는 사람 없는 줄 알았는데 누군가 내리니 살짝 당황한 듯하다.

기차가 떠나고, 사람 없는 산골 간이역에 남았다. 역무원 한 명 없는 호젓한 간이역이다. 열차에서 내려, 열차가 떠나고 나서야 텅 빈 플랫폼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별어곡에서 그 빈자리를 그려본다.


시간이 깊이 스며든 나무.

오래된 역은 키 큰 나무가 함께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깊이 스며든 벚나무를 비롯하여 시조 한 수처럼 간결한 전나무, 그 곁에 봄을 가득 품은 버드나무와 산수유나무도 어우러져 있다. 꽤 큰 밑동과 여러 갈래로 뻗은 굵은 가지, 몇 살이나 되었을까. 별어곡역사 바로 곁에 심어진 벚나무가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인다. 1966년 역사 건물을 짓고, 1967년 정선선이 이어져서 기차가 다녔으니 적어도 40년이라는 시간이 묻어 있다. 별어곡역도 이 나무들과 함께 세월을 담았고, 지붕 색이 그렇게 오래된 나무색을 닮았다. 늘 곁에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뒷모습만 남은 곳.

한때 정선은 검은 황금을 찾는 사람들로 붐비었고, 기차 기적 소리가 듣기 좋았던 곳으로 전해진다. 별어곡역도 기차 타고 통학하는 학생들 재잘거리는 웃음소리가 봄꽃처럼 송이송이 피어났고, 머리에 봇짐을 이고 장터 갔다 오신 할머니도 보따리에 따뜻함을 한 아름 담아 오셨던 곳이다.

꽃이 활짝 피다가 시들어 떨어지듯, 정선 가는 열차는 한 칸씩 짧아졌고, 기차 타고 떠난 사람들도 뒷모습만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다. 꿈을 안고 찾아와 시름을 씻어내던 이들이 떠나면서, 해가 져버린 탄광촌을 나타내는 정선선 꼬마열차조차도 흐릿해져 가는 추억 속 낡은 흑백사진처럼 되고 말았다. 이제 녹슨 철길 곁에 메마른 가지만 남은 정선 별어곡역에서 헤아려 볼 수 있는 것은 이별이라는 시간뿐인가 보다.





별어곡역은 외롭지만은 않다.

시선에 따라 다른 모습이 좋고, 흐르는 시간이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고, 다시 제천행 열차를 기다리는데, 동네 아이들이 역에 와서 꼬마 자전거도 타고, 배드민턴도 하면서 한껏 놀이를 즐긴다. 시골 간이역이 아이들 놀이터가 되어주는 셈이다. 별어곡역은 외롭지만은 않다. 그래도, 눈앞에 펼쳐진 낡은 플랫폼은 기차가 올 것 같지 않았다.


사진 - 2009.04, 글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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