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평역이 어디였을까.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시골역이 하나 둘 시들어가고 지워지는 이즈음에도 간이역을 배경으로 시를 쓰고 수필을 적는 이가 아직 있지만, 너도나도 문학을 꿈꾸었던 1980년대 초가 절정이었지 않나 싶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1960년대, '70년대를 거쳐 소복소복 쌓이기도 했으면서, 1980년대 초만 해도 조그만 시골역에 사람이 꽤 붐비었고, 기차 타고 고향을 떠나거나 완행열차 타고 고향역에 내리는 이가 많았던 때이다. 간이역이 지니는 역사성에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고 서정성만 두드러지게 나타내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문제가 있으나 그때는 그렇게 가슴속 깊이 따뜻함이 있었다.

이른 아침 첫차가 올 때면 지금은 맞이방이라 부르는 대합실에서 나이 든 시골 역장님이 난로를 피우며 손님을 기다리고, 살짝 찌그러진 주전자가 난로 위에서 뽀얀 김을 내뿜을 때면 나무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면서 보따리 짐을 무겁게 머리에 이고 장터 가는 어머니나 까까머리에 까만 교복 입고 학교 가는 아이가 역장님한테 인사를 했을 그런 시절이다.

간이역을 노래한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지고 지금도 사랑받는 곽재구 시인 「사평역에서」가 바로 1980년대 초에 나왔고, 그 '절정'을 스스로 증명하는 작품이다. 송이눈 쌓이는 겨울밤에 톱밥난로 지피는 대합실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린 시에 담긴 그곳은, 한희원 화가가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지금은 사라진 경전선 남광주역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곽재구 시인이 시로 그렸던 남광주역이 없어진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철길과 플랫폼 자리는 '주차장'이 되었고, 옛 역명판 모양으로 세워놓은 공원 안내판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관광이라는 것도 돈으로 살 수 없는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두는 것에서 비롯하는데, 광주시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꾸밀 수 있는 광주 비엔날레 같은 일회성 행사 외에 무엇을 했는지 답답할 뿐이다. 옛 나주역사가 1929년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로 전라남도 기념물 제183호로 지정하여 보존하였고, 최명희 소설 「혼불」 배경으로 알려진 옛 서도역이 남원시와 지역 문화인 관심 속에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곳으로 잘 남아 있는 것을 살펴보아도 남광주역 철거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남광주역이 허물어졌어도 역전 광장에서 생겨난 남광주시장이 그 자리에 남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찾는다. 1960년대 초 벌교, 보성, 화순, 남평 등지에서 무거운 봇짐 든 어머니들이 첫 기차 타고 남광주역에 내려 역전 광장에 자리를 펴고 채소나 과일, 생선 등을 팔던 장터에서 비롯했다. 날마다 아침이면 목포행 열차가 서면서 사람 들끓는 장터가 생겼다가 순천행 열차가 떠나면서 다시 역전 광장이 썰렁해졌던 모습으로 전해진다. 이제 남광주역은 광주 지하철역 이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스스한 아침, 남평역 가는 길.

은행나무가 아직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는 남도이지만, 비가 그치면서 늦가을 바람이 제법 아스스하다.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했고, 아침 첫차를 타고 남평역으로 가는 길이다. 해가 떠오르는 창밖 풍경과 창문에 반사된 열차 안 모습이 유리창에 빗물이 흐르듯 겹쳐 보이는 시간이다. 새벽 구름이 빗물을 감출 때 다가오는 아침은 서늘한 울림으로 나를 부른다.

빛고을 광주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드나 싶더니 이윽고 남평역에 다다르면서, 카메라를 챙겨 들고 좁은 계단을 내려 플랫폼에 발을 디딘다. 기차는 망설임 없이 바로 떠나고 철길을 스치는 소리가 멀어져 가면서 사람 없는 시골역은 고요 속으로 다시 파묻힌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려 하고, 아침 안개 닮은 입김이 나면서 사르르 떨린다.




사평역 닮은 남평역.

곽재구 시인이 그렸던 「사평역에서」는 임철우 소설 「사평역」으로 다시 형상화되었다. 대합실 한가운데 놓인 녹이 잔뜩 슨 낡은 톱밥 난로가 주요 소품으로 계속 나오지만, 눈 내리는 밤 피곤한 몸으로 졸면서 쿨룩쿨룩 기침 소리 내면서 집으로 돌아갈 막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모습을 시 「사평역에서」로 그렸다면, 산골 간이역 대합실에서 읍내로 서울로 가는 막차가 어서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소설 「사평역」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다르다.

시를 모티프로 소설을 썼으니 실재하는 어떤 역을 그린 것은 아니며, 곽재구 시인이 노래한 사평역도 꼭 남광주역이 아니라 당시 전라도 몇몇 역 분위기를 따왔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은 추억을 간이역으로 꺼내어 본다면, 사평역이 어디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작은 역사 건물", "유난히 높은 천장", "봄날 몸을 푼 강물이 흐르듯 반원을 그리며 유유히 산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철길", … 소설 「사평역」에 나오는 산골 간이역을 경전선을 비롯하여 전라도를 지나는 철길에서 찾아보면 남평역이 가장 많이 닮았다. 나주 남평역은 무등산 줄기 따라 남쪽에 이어진 정광산 아래 산골 역이며, 영산강 흐르는 나주평야와는 동떨어진 마을로 석탄 캐던 화순 쪽에 가깝다.






시간과 어긋나는 공간, 남평역.

남평역은 1930년 처음 문을 열었고, 1956년에 새로 지은 역사가 원형을 잘 보존하면서 지금에 이르고 등록문화재 제299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어느 역이든 역사 건축양식을 살펴보면 언제쯤 지었는지, 어느 지방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지만, 남평역사는 1950년대에 지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례적이다.

주름진 함석지붕은 전라도 시골역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일본식 기와지붕이었던 것을 함석지붕으로 1970년대 즈음 바꾸기도 했는데, 맞이방 위로 높게 솟은 박공지붕과 철로 쪽으로 나온 역무실 모임지붕은 1930년대 역사 건축양식이다. 전라도 시골역 중 같은 경전선에서 살펴보면 보성 명봉역이 남평역과 비슷한 설계로 조금 닮기는 했지만, 명봉역은 맞이방 지붕 경사가 완만하고 높이도 낮아 1950년대에 지은 역 건물다운 모습으로 남평역과는 차이를 보인다. 화순 능주역도 1950년대 건물치고는 지붕이 높은 편이나 남평역만큼은 아니며, 굳이 얘기한다면 능주역은 남평역과 명봉역 중간쯤이다.

물론 박공경사지붕이 높다고 일제 강점기 건축이고, 높이가 낮다고 1950년대 이후 건축이라고 딱 잘라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를테면 동해남부선 송정역이나 덕하역은 부드러운 지붕 경사가 마치 1950년대나 '60년대에 지은 시골역처럼 보이지만, 1940년대 초 역 건물이다. 송정역과 덕하역은 지붕 기울기 말고도 그 형태가 다르고 바닷가 역이라는 지역성을 같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남평역사가 어떻게 보면 높은 지붕이 산골 역이라는 지역성에 맞는 듯싶어도, 세부적인 곳을 살펴보면 남평역사 맞이방 출입문 차양은 명봉역사처럼 1950년대 이후 역사 건축에서 나타나는 일자형이 아니라 그보다 오래된 양식으로 가새가 있는 경사진 형태이다.

지금도 중앙선 남쪽에는 일제 강점기에 지은 오래된 역사가 몇몇 남아 있고, 남평역과 비슷하게 생긴 역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중앙선 영천역 ~ 경주역 간을 표준궤로 개량 공사하면서 1930년대 말에 역사를 옮겨 지은 아화역과 모량역이 (지붕 마감재 차이로 건물 전체 인상이 다르지만) 맞이방 문 옆에 창문이 같이 있어 맞이방 입구가 비대칭으로 보이는 것까지 남평역과 닮은꼴이다. 그리고 우보역과 신녕역에서 피라미드 모양으로 생긴 역무실 모임지붕을 살펴볼 수 있다.

언뜻 보기에 아화역이나 모량역이 남평역과 꽤 닮은 듯해도 남평역 철로 쪽 맞이방 차양을 보면 전라선 춘포역처럼 지붕과 차양 간격이 벌어져 있어 또 차이가 난다. 아화역과 모량역은 다른 1930년대 후반 역사 건축처럼 차양을 지붕 바로 밑에 가까이 붙여 지붕 전체가 높아 보이도록 했는데, 남평역은 그렇지 않다. 춘포역사를 전라선 개통 초기 1910년대 건축으로 보아 현재 남아 있는 역사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1929년 표준궤로 고치는 공사를 시작하면서 전주역 등 기존 역사를 새로 지었다는 것을 살펴볼 때 알려진 것과 달리 춘포역도 그 무렵 건축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군산 임피역도 1930년대 중반 건축이면서 차양을 춘포역과 비슷하게 처리하였다.

이렇듯 남평역은 1956년 7월 역사 신축이라는 기록과 현재 남아 있는 역사 건축양식이 뭔가 맞지 않는데, 옛 모습에 가깝게 새로 다시 짓지는 않았을 테고, 1956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부속 건물을 1950년대에 지었다든가, 기록에 착오가 있다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60년대 지은 시골역 지붕은 부드러운 기울기로 뒷산 능선을 닮아 서로 어우러지는 풍경이지만 남평역은 산을 닮지 않았다. 플랫폼에서 바라본 남평역은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남평역사는 그렇지 않다. 오래된 나무에 가려지지 않았다면 시간과 어긋나는 공간은 더욱 싸늘하지 않을까.




바람 소리만 헤아리는 곳.

사평역은 흘러간 아늑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 사평역은 어느 눈 내리는 겨울밤 이름 모를 역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이다. 사평역 닮은 남평역은, 어쩌면 바람 소리만 헤아리는 곳으로 남을 듯하다.


사진 - 2009.11, 글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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