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강릉 가는 밤기차.

강릉 가는 밤기차는 자리를 꽉 채우고도 입석표로 탄 사람이 곳곳에 빽빽했고 선반에도 짐이 가득했다. 자리에 앉은 사람 대부분 덜컹거리는 기차 리듬에 맞추어 애써 잠을 청하는 듯하였고, 좌석 등받이 가까이 몸을 기대거나 손잡이인 양 붙잡고 그냥 선 채로 꾸벅꾸벅 조는 사람이 많았다. 그 곁에 팔을 뻗어 선반을 잡고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사람도 보였고, 출입문 쪽 좌석과 벽 사이 좁은 틈에 쪼그리고 앉아 머리를 기대며 잠이 든 사람도 있었다. 때는 여름이라 피로에 지쳐서 찜통에서 금방 나온 삶은 호박잎처럼 축 처진 사람들 사이로 홍익회 아저씨가 간식거리를 채운 손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면 누군가 캔맥주와 오징어 안주를 사간다. 침대칸으로 돌아와 학생들이 꽤 많이 탔다고 얘기를 주고받으며 맥주를 같이 마신다.

1998년 개봉한 홍상수 감독 영화, 「강원도의 힘」에 나오는 강릉 가는 밤기차 안은 그렇게 고단한 모습이다.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 머리 모양을 비롯하여 배낭이나 캔맥주 등 다른 소품도 1990년대 중반을 나타내지만, 1990년대로 막 접어들 무렵에도 강릉 가는 기차는 그랬다. 다만, 청량리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처음 떠났던 그때는 영화처럼 여름이 아니라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영월, 정선을 지나 태백으로 갈수록 새벽이 더 깊어가고 더 거친 한기를 느꼈다. 조금 더 참으면 동해를 볼 수 있다는 바람이 있기에 고단한 밤기차에서 긴 겨울밤을 보낼 수 있었을까. 운 좋게 좌석표를 얻으면 옆 사람과 자연스럽게 길동무가 되었고, 그냥 입석표로 타도 낯선 이와 함께 바닥에 주저앉아 서늘한 맥주를 마시며 먼 길을 같이 갔다. 꼭 이른 아침 동해 바다를 보고 싶어서 강릉 가는 밤기차를 탔던 것이 아니라 어쩌면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기에 몇 번이고 다시 탔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릉 가는 기차가 달리는 중앙선, 태백선, 영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 철길인지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겨울밤을 달리는 기차 창문에는 김이 가득 서려 있어 기차 바깥도 안쪽도 보이지 않는다. 드문드문 있는 마을에서도 뚝 떨어져서 온통 깜깜한 새벽에 강원도 산길을 달리는 기차에는 창문 밖 풍경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뿌옇게 흐려진 창문을 닦는 것은 창밖을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서 무언가 잡다한 생각을 흘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나 보다.

이따금 이름 모를 역에 기차가 서고, 함박눈이 소리를 삼키며 소복이 내리는 플랫폼에서 철도원 혼자 손님을 보내고 맞는 모습이 지금도 낡은 사진처럼 기억 속에 어렴풋한 프레임으로 남아 있기는 하다. 강릉 가는 밤기차에서 겨울밤을 처음 보냈던 그때에는 스쳐 갔었던 시골역이 단지 어디쯤 왔는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알려주는 이정표로만 다가왔었을 듯하다.


태백선에 쌓인 시간.

태백선은 영동선과 함께 험준한 산악철도로 만들어졌고 그만큼 긴 공사 기간이 걸렸다. 1949년 영월선을 처음 착공하고 여러 구간으로 나누어서 공사하다가, 1973년 고한선 고한 ~ 황지(현 태백역) 간 완공으로 영월선, 정선선, 황지지선 등을 통합하여 태백선으로 이름을 붙이면서 동서횡단노선이 열렸고 추전역도 이때 생겼다. 이후 1977년 함백 ~ 조동 간 똬리 굴 개통으로 예미 ~ 조동 간 함백선을 병행 구간으로 연결하고, 1978년 두평역(현 탄부역), 청령포역 개역으로 현재 태백선 모습으로 갖추었다. 30년 가까이 걸린 대공사인 셈이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노역으로 만들어진 중앙선 철길이 그렇듯, 태백선과 정선선도 산업화 물결에 맞추어 고초를 겪어야 했던 노동자 한이 어린 철길이다. 함부로 담을 수 없는 땀방울이 맺혀 있고,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어려 있는 곳이다.


아담한 한옥 역사, 영월역.

태백선은 처음부터 산업철도이기에 화물역을 유난히 많이 지난다. 세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그윽한 경치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펼쳐지는 산자락 따라 달리다가 철도가 산업시설이라는 걸 새삼스레 확인시켜주기라도 하려는지 삭막한 화물역을 때때로 거치면서 풍경과 현실이 마주치는 대조를 이룬다.

영월역 서쪽으로, 제천역에서 쌍용역까지는 지금도 여전히 거대한 시멘트 공장이 돌아가는 회색빛 풍경이다. 그래서 태백선과 중앙선을 거쳐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열차는 건전지처럼 둥글둥글하게 생긴 화차가 길게 이어진 석회석 화물열차이기도 하다.

영월역 동쪽으로, 석항역부터 영동선과 만나는 태백 끝자락까지는 탄가루 날리는 검은빛이었다. 물론 이제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석탄 더미에 수북수북 눈이 쌓여 묘한 대비를 이루었던 태백선 화물역 겨울 풍경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었다. 태백에는 눈이 없다.

2009년 현재 태백선에서 옛 모습을 간직한 역은 송학역, 영월역, 연하역 등 세 곳이 남아 있다. 1949년 태백선 착공 초기에 지은 제천 송학역사가 태백선에서는 가장 오래되었다. 맞이방 박공지붕이 낮은 걸 빼면 1940년대 일제 강점기 시골역 건축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광복 초기 모습이다.

1955년에 지은 영월역은 조선기와를 얹은 아담한 한옥 역사로 사랑받는 곳이다. 전주역사를 비롯하여 그나마 있는 몇몇 조선기와 역사가 국적이 애매한 시멘트 콘크리트 덩어리인 것을 생각하면, 제대로 양식을 갖춘 한옥 역사는 단청까지 아름다운 영월역사 딱 하나뿐이다. 송학역은 화물역이고, 연하역도 간이역보다 등급이 낮고 업무가 제한된 신호장으로만 남았으니 50년 넘게 태백선 초기 모습으로 여객열차를 타고 내리는 손님을 맞는 곳도 영월역 하나 남았다. 터줏대감처럼 태백선 중심에 자리 잡은 역, 그곳이 영월역이다.




지워져 가는 연하역.

태백선에 그림 같은 간이역이 있었을까. 영월역은 한옥 역사가 그럴듯하나 태백선에서는 읍내에 있는 큰 역이다. 오래전에 태백선 지선으로 바뀐 정선선에는 별어곡역, 선평역, 나전역 들이 비록 쓸쓸한 무인역이지만 지금도 기차가 가끔 서는 간이역으로 날마다 외롭게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태백선에서는 연하역이 예전에 그랬다.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연하리, 연하역. 여러 겹으로 둘러싼 산줄기가 풍수지리에서 이야기하는 연꽃 모양이며, 그 산줄기 아래 마을이 있어 연하(蓮下)라고 이름이 붙었는데, 관계는 없지만 연하(蓮下)는 백범 김구 선생 초호이기도 하다.

연하역은 비록 하루에 몇 명 안 되는 손님이 찾는 곳이었지만 태백선에서는 가장 아늑한 간이역이었다. 다른 조그만 시골역처럼 발그림자도 아니하면서 2005년 4월 역무원 철수로 무인신호장이 되었고, 하루 두 차례 서던 기차도 2007년 6월 이후 그냥 지나간다. 지금은 폐역이 된 중앙선 능내역과 같은 날 무인역이 되고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 되었다. 시설관리반 직원 몇 사람이 있을 뿐이다.

시골역을 찾아다니다 보면 맞이방이 몇 평 되지 않는 조그만 역사가 많고, 연하역도 그런 작고 귀여운 쪽에 속한다. 한옥은 지붕과 차양이 하나로 이어져 홑지붕을 이루는 게 보통이고, 일본식은 지붕과 차양이 떨어진 겹지붕이다. 비록 일제 강점기에 지은 역 건물이지만 조선식으로 절묘하게 바뀐 중앙선 반곡역사와 그냥 보기에도 너무나 일본식인 경부선 심천역사를 비교하면 그런 차이가 뚜렷하다.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몇몇 지방에서는 지붕 수리가 쉽도록 겹지붕으로 짓기도 하는데, 연하역사도 겹지붕처럼 차양을 넓게 지어놓았다. 조금 기우뚱하면서 살짝 흐트러지고 뭔가 딱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어서 더욱 정감이 간다.

1957년 문을 연 연하역과 쌍둥이 역사가 있었다. 바로 태백선 지선 함백선 함백역이다. 예미역과 조동역 사이가 마치 복선처럼 함백선과 병행구간으로 이어지는데, 태백선 본선은 산 중턱을 하늘열차처럼 달리고 함백선은 산 아래 마을을 가로질러 놓여 있다. 태백선 정선 구간을 달리다 보면 산 아래 함백선이 멀리 보이고, 안경다리도 눈에 들어온다.

2006년, 함백역이 공문 한 장에 느닷없이 철거되었다. 간이역은 단순히 기차가 가끔 서는 곳이 아니라 긴긴 세월이 함께하여 소중한 곳이다. 마을 주민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함백역 복원 운동을 하면서 당시 설계도를 구했지만, 한국철도시설공단에서 넘겨받은 건 평면도 1장이 전부였다. 측면도와 배면도 없이 사진에만 의존하여 새로 설계 도면을 제작하다가 함백역과 연하역이 기본설계가 같다는 사실에 옛 모습으로 남아 있는 연하역사를 실측하여 설계 도면을 마무리 짓고 2008년 함백역사를 복원하였다.

함백역이 역사 복원 후 산업화 역사를 담은 전시관이 되었다면, 연하역은 단선 철길 신호장으로 마주치는 다른 열차를 피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 뿐이다. 역 바깥에서 보면 역명판도 없고, 플랫폼에 마땅히 있어야 할 행선지 안내판도 사라졌다. 자박자박 밟히는 자갈만 굴러다니는 낡은 플랫폼에는 태백선 제천기점 42km를 알리는 거리표만 눈에 띈다.




여름꽃 한 송이.

사람 발길 없는 메마른 연하역 플랫폼을 눈여겨보았다. 7월 한여름에는 제법 무성했을 루드베키아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한 송이만 피어 있었다. 산에는 단풍 들고 플랫폼을 가득 채웠을 잡초도 다 시들어 가는 시월 말에 여름꽃은 누구를 기다렸을까.

납작한 돌을 주워 카메라 밑에 놓고 로우 앵글 촬영을 시도했다. 익숙한 렌즈 초점거리라면 굳이 파인더 보지 않아도 프레임이 어떻게 나올지 미리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으므로 노 파인더 세팅으로 사진 찍을 때가 자주 있다. 로우 앵글이나 하이 앵글 촬영은 거의 그렇게 담았다. 그림자가 강하게 져서 카메라에 타이머 걸고 뒤로 물러서려는데, 마침 강릉 가는 기차가 가볍게 기적을 울리며 천천히 지나간다. 텅 빈 플랫폼에서 혼자 사진 찍는 나를 연하역으로 들어오며 멀리서 미리 보았던 모양이다. 한 송이 남아 있던 연하역 루드베키아는 아침 서리를 맞으며 그렇게 조금씩 지워져 갔나 보다.


사진 - 2009.10, 글 - 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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